통합 검색
통합 검색


고단한 삶의 위로와 노동 인권을 위한 선교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이하 인천산선)는 1961년 기독교대한감리회 중부연회가 인천 화수동 초가집을 매입해 설립한 ‘인천산업전도위원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산업도시 인천에서 노동자의 삶을 위로하고 인권을 지키기 위한 선교기관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신학생과 목회자, 실무자들이 6개월~1년간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의 삶을 체험하며 대성목재, 흥한방직 등에서 공장 목회를 진행했습니다. 1960년대 중반에는 조지 오글 목사가 ‘카프링 모임’을 조직해 11명의 리더를 ‘공장 사도’로 훈련하여 각 공장과 지역에서 활동하게 했고, ‘느헤미야 모임’을 통해 노동자들이 매월 모여 단결과 연대를 키워갔습니다.
70년대 민주노조의 산실, 인천산선
1968년 ‘산업전도’를 ‘산업선교’로 바꾸며 명칭도 ‘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로 개편했습니다. 조승혁·조화순 목사는 “약한 것을 강하게”라는 슬로건 아래 노동자교회를 세우고 노동학교를 운영하며 노동교육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독서·취미클럽 등 30여 개 동아리를 조직해 노동자 700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이는 1970년대 동일방직, 삼원섬유, 반도상사 여성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만들고 민주적 의식을 키우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 시기 인천산선은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산업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내 최초로 산업안전교육을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조지 오글, 조승혁, 조화순, 김동완, 김정택 목사와 황영환, 김은혜, 이창식, 김근태, 최영희, 인재근 등 민주화 인사들이 함께 실무자로 참여하며, 민주노동운동과 민주화의 역사가 이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동일방직에서는 1972년 국내 최초 여성 지부장이 선출되었고, 정부와 회사의 탄압에도 민주노조를 지켜냈습니다. 1976년 나체시위, 1978년 똥물사건을 거쳐 124명이 집단 해고될 때도 인천산선은 이들에게 안식처이자 방패, 그리고 삶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지역과 함께, 주민과 함께
1980년대 인천산선은 독재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지역 주민 대부분이 노동자·서민이라는 점에 주목해 주민선교 체제로 전환하고 ‘일꾼교회’를 창립했습니다. 또한 노동자와 지역민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산우신용협동조합’을 설립했습니다.
1980년에는 전국 최초의 어린이 공부방인 ‘민들레어린이선교원’을 세워 노동자 자녀들을 돌보았고, ‘일꾼교회 주말진료’를 통해 치과·의료 무료봉사를 시작했으며, 이는 오늘날 의료협동조합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1987년에는 조화순 목사와 70년대 민주노조 간부·활동가들이 함께 도화동에 ‘일하는 여성 나눔의 집’을 열어 탁아소, 기술훈련, 여성 노동자 지원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는 현재까지 여성노동자의 대표 조직으로 활동하는 ‘인천여성노동자회’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노동자 교육과 문화활동의 장으로, 긴급지원으로
1980년대 중반부터 인천산선은 노동자 웅변교실, 일꾼자료실 교재 발간, 기독노동자회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또한 미싱·용접 등 직업훈련을 실시하고, 노동조합 설립과 초기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많은 노동자가 해고되자 ‘해고자협의회’를 품어 울타리가 되었습니다.
1990년부터는 ‘일꾼역사교실’을 개설해 12기에 걸쳐 5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철학·경제 등 교양교육을 통해 노동자의 의식을 높였습니다. 문화교실을 열어 건강한 노동문화를 확산했고, 노조 노래패와 풍물패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인천의 노동현장에서 사고나 분쟁이 발생하면 인천산선은 가장 먼저 달려가 회사와 경찰, 노동자 간 대화를 주선하고, 유가족을 돌보는 역할을 끝까지 감당했습니다.
이처럼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인천산선은 이후 ‘감리교사회복지선교회’로 이름을 바꾸고, 장애인과 소외된 이웃을 위한 선교활동으로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철거를 막아낸 연대의 힘으로 인천노동역사문화관 건립 합의
2009년 화수·화평지구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고, 2021년 인천도시심의위원회가 사업을 승인하면서 인천산선은 철거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김정택·김도진 목사가 6월 22일부터 목숨을 건 30일 단식투쟁에 나섰고, 이는 지역과 감리교 인사들의 릴레이 단식으로 이어져 총 288일간 지속되었습니다. 이어 인천지역 92개 시민단체가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존치를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그 결과 2023년 5월 25일, 인천광역시·화수화평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인천도시산업선교회·감리교대책위원회가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인천산선 건물은 이축 이전하고, 일꾼교회에 보관된 자료를 바탕으로 ‘인천노동역사문화관’(가칭)을 조성해 역사를 전시·기록하기로 했습니다. 문화관은 정비사업조합이 기부채납한 부지에 건립되며, 인천산선이 위탁받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사단법인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설립
2025년 4월 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70~80년대 인천도시산업선교회와 그 구성원들이 노동기본권 교육과 노동조합 설립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보안사령부와 중앙정보부가 경찰·노동청 등 관계기관을 동원해 인천산선을 탄압하고, 사찰·내사·공작 등 각종 인권침해를 자행하며 조직 와해를 시도한 사실을 진실로 확인했습니다.
이로써 과거의 탄압 속에서도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헌신했던 인천산선의 사명과 실천이 오늘과 미래에도 이어져야 함이 다시 확인되었습니다.
인천은 산업화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 특히 여성노동자가 권리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실천했던 역동적인 도시이며, 인천산선은 언제나 그들과 함께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여성,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법외 노동자 등 많은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고 있어 낮은 곳을 향한 연대와 실천이 여전히 요구됩니다.
이에 과거 인천산선에 함께했던 노동자·실무자·목회자들은 현재의 노동단체, 감리교 단체,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그 역사와 정신을 잇기 위해 사단법인 인천도시산업선교회를 설립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