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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글 목사 5주기, 도로시 오글 선교사 별세 추모 기도회 기억과 다짐 발언 3 _ 이은재 전도사(기독교반성폭력센터, 중부연회 김포지방 서광교회)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30
2025-11-16 17:25:02
조지 오글 목사 5주기, 도로시 오글 선교사 별세 추모 기도회 - 기억과 다짐 발언 3
 
저는 조지 오글 목사님을 직접 뵌 적이 없습니다. 그분을 책으로 배웠고, 더 많이는 조화순 목사님을 통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조지 오글 목사님은 조화순 목사님이 기억하는 조지 오글 목사님입니다. 조화순 목사님은 평생 존경하는 두 사람을 꼽을 때 김근태 선생님과 조지 오글 목사님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늘 하시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조지 오글 목사님은 너무 검소해서 밥과 김치만 담은 누런 도시락통을 가방에 싸서 다니셨다는 얘기입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하루는 버스에 도시락이 든 가방을 두고 내리셨는데요. 가방을 찾으러 갔는데, 기사님이 가방 없다고 못봤다고 했지만 김치 국물이 빨갛게 스민 가방과 도시락을 보고, 이게 내 가방이라고 하며 들고 오셨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조화순 목사님은 조지오글 목사님이 '그렇게 사신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오글 목사님에 대해서는 인혁당 사건에 대한 증언과 추방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삶과 일상, 말과 행동, 신앙의 일치를 이룬 분이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저는 〈긴 투쟁, 귀한 삶〉이라는 동일방직 여성노동자 50년 투쟁의 기록이 출간되어서 북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조화순 목사님은 그 자리에 안계셨지만, 계속해서 조화순 목사님과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의 이름이 여러 번, 나오시는 분들마다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조화순 목사님과 인천산선 이름이 계속해서 오르내린 건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 선배님들의 삶에 기억으로만 머물러있지 않고 긴 세월 블랙리스트로 낙인찍혀 투쟁하며 살았던 그 근원에, 힘과 원동력, 뿌리와 바탕이 되어주었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조지 오글 목사님이 1984년 「새가정」에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글을 기고하신 걸 발견했습니다. “노동자에게 설교하려 한 것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서 예수를 발견하려 했다”고, 그리고 “교회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의 위치에서 사회와 정의를 보아야 한다”고 쓰셨습니다. 이것은 글뿐만 아니라 이미 삶으로 보여준 신앙이었습니다.
 
저희는 지금 조지 오글 목사님을 기억하고 도로시 오글 선교사님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누구를, 어떤 사건을 기억할 것인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조지 오글 목사님, 인혁당 사건, 인천산업선교회와 조화순 목사님,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과 똥물사건, 해고와 블랙리스트 낙인, 복직 투쟁을 지금까지 계속해서 기억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12.3 비상계엄, 내란 1주년이 곧 다가옵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던 날, 국회 앞에 계셨던 분들도 있고, 그 뒤로 수개월 광장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12월 21일 밤에서 22일이 되던 남태령 고개를 이 자리에서 꼭 기억하고 싶습니다. 12월 21일 전국 각지의 농민들이 <전봉준 투쟁단>을 결성해서 트랙터를 몰고 서울로 상경 투쟁을 합니다. 서울, 사당에 들어서기 직전,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 진압에 막혀 고립됩니다. 그 날은 가장 길고 추웠던 동짓날이기도 했습니다. 남태령 고개는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주변에 편의점, 가게 하나 없습니다. 지하철 역만 덩그러니 있습니다. 그날 저녁, 고립은 계속 되었고 지하철이 끊기고 사람이 없으면 경찰이 연행을 한다는 얘기가 있었고 다들 체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응원봉 여성들과 시민들이 삼삼오오 남태령으로 모였습니다. 농민들이 홀로 고립되지 않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지하철은 끊겼습니다. 그때부터 배달음식을 전국각지에서 남태령 고개를 도착지로 보내주었고, 버스를 대절해 히터를 틀고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지하철 화장실에는 핫팩, 담요, 생리대, 물, 간식거리들이 넘쳐났습니다. 밤새 유튜브에 중계되던 광장식 인사와 발언들로 밤을 함께 지샌 분들도 많이 계실 겁니다. 저도 주일 예배가 끝나고 남태령으로 갔습니다. 차별받는 정체성을 가진 수많은 당사자들이, 고립되고 배제된 농민들과 함께 밤을 지새웠습니다. 여성,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노동자, 농민들이 서로 환대와 돌봄을 나누고 곁에 함께했습니다.
 
조지 오글 목사님을 기억하는 자리에서 왜 남태령 이야기를 하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무고한 사법살인으로 살해당한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들과 낙인찍힌 유가족들, 그 옆에 선 조지 오글 목사님과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한 조화순 목사님, 블랙리스트로 낙인찍힌 노동자들과 함께했던 인천도시산업선교회는 결국 고립되고 배제당한 사람들의 대명사 그 자체이고 '서로가 서로와 연대했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조지 오글 목사님은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세상의 경제, 정치, 군사적인 세력들은 명백히 이러한 교회의 진가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교회는 당국자들과의 우호관계를 잃어버릴 것이다. 교회는 돈과 교인들이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연대성을 통하여 차별과 억압이 실행되지 않는 정의로운 사회의 가능성이 도래한다.” 고 말입니다.
 
“우리들은 정의파다”라는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민주노조 건설투쟁과 복직투쟁 30년, 지금은 50년이 된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제목이 조지 오글 목사님의 정신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세상의 권력이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블랙리스트로 낙인찍히더라도 민주주의와 정의, 우리들은 정의파다 라는 그 확신과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겠습니다. 조지 오글 목사님, 조화순 목사님, 인천 산선과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립된 농민들 곁에 선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옳은 자리에 서는 사람들'이 되겠습니다.조지 오글 목사님을 기억하고 도로시 오글 선교사님을 추모하는 오늘, 이것이 우리의 다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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