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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보자 ‘어느 여성 노동자의 길 _ 김도진 목사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63
2025-09-11 15:55:22

걸어보자, ‘어느 여성 노동자의 길’

김도진 목사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총무)

 

인천 동구에는 ‘만석동 동일방직’에서 ‘화수동 인천도시산업선교회’에 이르는 700여 미터의 거리가 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잊혀진 거리이지만, 사오십 년 전 힘들고 가난했던 시절, 이곳은 우리의 누이들이 부모의 짐을 덜고 오빠와 동생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학교가 아닌 공장으로 발길을 옮겨야 했던 ‘노동의 거리’였다. 바로 우리 누이들이 걸었던 길이다.

학업 대신 가족을 먼저 생각한 누이들의 선택은 애틋했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했다. 저임금에 묶인 70년대 수출주도형 경제체제 속에서, 위험한 작업환경과 비인격적인 대우, 만성적인 임금 착취를 견디며 미래를 꿈꾸기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다. 온몸으로 사회 모순을 버텨내야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청춘만은 빼앗기지 않았다. 세상은 누이들의 미래까지 앗아가려 했지만, 그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기회가 될 때마다 한자를 배우고 꽃꽂이를 배우며 교양을 익혔다. 빠듯한 3교대 근무 속에서도 책을 읽고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보고 소조모임을 하며 미래를 붙들었다. 누군가는 “한자 몇 자 배우고, 어쩌다 하는 꽃꽂이가 대수냐”고 말했지만, 그것은 바로 ‘미래를 놓지 않는 청춘의 의지’였다. 그 의지는 결국 ‘동일방직 민주노조운동’으로 발전해 갔다.

‘동일방직 민주노조운동’은 1970년대 한국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어용노조를 대신해 여성 집행부가 등장하며 노동자의 권익을 세워갔다. 그러나 회사는 조합원 매수와 똥물 투척으로 민주노조를 파괴하려 했고, 군사정부는 이들을 불순분자로 몰아 수백 명의 조합원을 강제로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의 조화순 목사도 함께 끌려갔다. 결국 동일방직 여성노동자 124명은 회사에서 쫓겨났다.
훗날 이 사건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의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게 된다.

걸어보자. ‘어느 여성 노동자의 길’을.

인천 동구 일대에는 1883년 인천 개항부터 해방까지 이어진 식민지 산업시설이 남아 있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근현대사의 산업유산이 산재해 있다. 그곳에 바로 ‘어느 여성 노동자의 길’이 있다.

길은 걸어야 길이 된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길은 넓어진다.
사람은 길을 걷고, 길은 또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서로를 연결하고, 서로를 소통하게 한다.

‘어느 여성 노동자의 길’은 걸어야 할 길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어야 할 거리다. 지금은 한적한 구도심의 잊힌 거리 중 하나지만, 한 세대 전 이 거리는 우리의 누이들이 오빠와 동생들의 학비를 뒷바라지하고 부모의 짐을 덜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가족애가 흐르는 거리였다. 척박한 상황에서도 꿈을 놓지 않은 청춘들이 있어 아름다웠던 거리였다. 여성 노동자들이 기름에 튀긴 꽈배기와 도넛 하나에 행복해 하며 서로를 의지하고 격려했던 정이 넘치는 거리였다.

무엇보다 이 거리는, 엄혹한 시절 여성 노동자들이 법적으로 보장된 노동권을 주장하며 노동의 건강성과 인권의 정당성을 세상에 내보였던 선구의 거리였다.

그때 그 시절, 우리 누이들이 몸으로 보여줬던 ‘가족애’를 기억하며,
꿈을 놓지 않았던 청춘들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며,
서로를 의지하고 격려하며 인간 냄새 진하게 났던 그 ‘연대’를 기억하며,
무엇보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혔던 그 멋진 사람들을 기억하며,

걸어보자! 어느 여성 노동자의 길.

 

어느 여성노동자의 길 프로그램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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